행복편지 열: 힐링, 바순소리, 기도
2014-05-16 | 79
J에게
하늘은 푸르고 대기는 투명하고 햇살은 따스하고 해질녘 바람은 서늘 상쾌하고
자연은 하루하루 노랑색을 더해갑니다.
여름 내내 많이 힘드셨지요?
참기 힘든 분노와 좌절 뒤에 밀려오는 무력감으로 힘들고 지쳐갈 때,
진부한 위로의 말보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음악을 들려드리는 것이 더 나을 듯 싶어 음악편지를 보냅니다.
지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독거려 주리라 믿습니다.
FM음악방송의 시그날로 사용되고 있기에 귀에 익숙한 바순소리지요?
마치 고즈넉한 밤길을 함께 걷고 있는 다정다감한 동행 같은 음악,
이 음악이 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노스탈지어…
캐나다 태생의 자연친화적인 뉴에이지 음악가 빌 더글라스가 영국 원주민인 게일인들이
초기교회에서 사용했던 찬송에서 모티브를 차용해서 작곡하고 바순으로 직접 연주한 곡입니다.
제 마음의 힐링음악 1번으로 20년 넘게 듣고 또 듣고 흥얼흥얼 멜로디를 따라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진답니다.
<바순 이야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바순(Bassoon)은 목관악기들의 베이스를 담당하기에
낮고 소박하며 오보에보다 부드럽습니다.
16세기쯤에 지금의 외형을 갖추고 독일의 헤켈에 의해 24개의 key와 5개의 지공을 갖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숨을 불어 넣으면 금방 따스한 생명력으로 혼자 튀지 않으면서
다른 악기와 잘 어울리는 바순소리…마음이 조금 편안해지셨나요?
다음은 바순소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 한 점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Hymn>과 짝을 이루는 기도이야기입니다.
<식사전의 기도>
<샤르댕.'식사전의 기도' 1774년, 루브르박물관>
하얗게 빛나는 식탁보에서 시작되는 정갈함이 엄마와 두 아이들의 옷매무새에서
수수하고 깔끔함을 더하고 가재도구는 소박하지만 잘 닦여져 있습니다.
화면 대부분의 차분한 갈색들이 등장인물의 얼굴표정과 잘 어울려져
친밀감과 따뜻한 감성을 불러일으킵니다.
소박한 음식이 담긴 그릇을 내려놓으면서 엄마가 작은 딸에게 말합니다.
‘이제 그만 놀고 기도하고 밥 먹어야지’
아이는 금새 가지고 놀던 작은 북을 의자에 걸어 놓고 엄마를 향해 두 손을 꼭 모은 채 물어봅니다.
'엄마, 이렇게 기도 하는거에요?’
식탁 건너편의 야무진 표정의 언니는 이미 두 손을 모은 채
동생이 얼마나 감사기도를 잘하는지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엄마도 가만히 작은 딸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 기도문을 가르쳐주지 않는군요.
아이에게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는 차분한 엄마의 배려심이 돋보입니다.
이윽고 작은 아이가 또박또박 기도를 하겠지요.
...
...
감사합니다.
그리고 두 아이가 합창하듯 큰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자아알 먹겠습니다~’
엄마 앞에는 식기가 놓이지 않은 것을 보니 아마도 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기다리려나 봅니다.
<샤르댕 이야기>
화려한 기교대신 절제와 고요함으로 따스한 정서를 오래된 스냅사진처럼
표현한 장 바티스트 샤르댕(Jean Baptiste Chardin. 1699~1779)은 가구를 만드는
장인의 아들로 프랑스 파리의 생제르망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했기에 전통적인 아카데미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을 뿐더러
평생 셍제르망을 떠나본 적도 없었답니다.
당시 유행하던 로코코의 화려함이나, 잘 팔리는 역사화, 돈이 되는 초상화에 눈 한번 돌리지 않고
평생 묵묵히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저는 샤르댕의 그림과 얀 베르메르의 그림이 느낌이나 구성면에서 서로 많이 닮은 듯 싶습니다.
36살에 아내를 잃고 10년동안 남매를 홀로 양육하면서 일상에 대한 성찰의 깊이가 더해졌기에
45살에 그린 <식사전의 기도>는 각별한 의미로 작가가 가장 아끼는 명작으로 남게됩니다.
딸을 병으로 잃고 그림 공부를 하던 외아들마저 자살로 세상을 마감한 뒤,
설상가상으로 납이 든 안료를 오랫동안 사용하는 바람에 시력마저 나빠졌지만
그는 파스텔화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당대에는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잊혀진 화가로 쓸쓸한 생을 마감합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엽부터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세계의 유명한 미술관과 콜렉션들이 가장 탐내는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좀 씁쓸하지요?
J님도 샤르댕의 그림에서 갈색톤의 바순소리를 들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아파본 사람만이 성찰을 할 수 있고 성찰을 잘하는 이가 성숙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J님의 힘든 여름앓이가 늦가을에는 성숙으로 열매맺기를 성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PS. 지민이 동생, 민재 돌날 트럼펫으로 ‘섬집아기’를 들려주다가
그만 음을 틀린 순간을 포착한 재미있는 사진을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