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편지 넷 : 달콤하게, 더 달콤하게
2014-05-16 | 73
제비꽃을 닮으신 V님에게
붉고 노랗고 하얀, 세상의 모든 꽃들이 봄 축제의 퍼레이드에 참가하려고
색깔별로 서로서로 뽐내는 분주한 4월입니다. 분홍은 매화를 앞세워 이미 퍼레이드의 선두에 서서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군요.
V님도 3월은 씩씩하게 보내셨지요?
씩씩하신 목소리로 감기에 지친 저를 오히려 위로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지난달, 흙먼지를 마시면서 씩씩하게 천리길을 걸었던 노래 속 아이들도,
몰려오는 소나기를 피해 전력질주를 했던 그림 속의 연인들도
이제는 서로를 칭찬하며 달콤한 휴식과 꿀맛 같은 단잠에 빠져 있겠지요.
하물며 40여년의 추위와 바람을 묵묵히 견뎌내신 V님이시라면 당연히 달콤한 휴식이 선물로 주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달콤하다 : 알맞게 달다
: 아기자기하게 마음을 사로잡는 느낌이 있다
그런데 ‘달콤하다’는 말을 들으시면 어떤 단어가 연상되시나요?
딸기, 포도, 복숭아, 체리, 수박 등 온갖 제철 과일에는 달콤함이 가득하네요.
솜사탕, 초컬릿, 아이스크림, 커피, 케익, 도넛… 셀 수 없이 많은 달콤한 맛에 이미 우리 혀는 길들여져 있구요.
달콤한 인생, 달콤한 유혹, 달콤한 휴식, 달콤한 키스, 달콤한 신혼, 달콤한 목소리, 달콤한 미소…
‘달콤함’은 맛이기도 하고 기분이기도 하군요.
단맛에다 쓰고 맵고 짜고 신 맛을 적당하게 더해야만 달콤한 감칠맛이 우러나오듯이
우리 인생에서도 진정 달콤한 기분을 맛보려면 쓰고 시고 매운 시련의 시기가 전제되어야 하나 봅니다.
이런 시련들을 씩씩하게 이겨내신 이 편지를 읽으시는 모든 고마운 분들에게 달콤한 노래 한곡과
달콤한 그림 두 점을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듣고 보시면서 꽃들의 퍼레이드를 즐기시거나 꽃그늘 아래 달콤함에 취해보시기 바랍니다.
달콤한 노래 : 첨밀밀
너무나도 잘 알려진 노래이지만 좀 더 찬찬히 살펴보기 위해 우선 노래제목을 들여다 볼까요?
중국발음 ‘톈미미’인 첨밀밀(?蜜蜜)은 ‘맛이 달다’라는 첨(?)에 ‘꿀’ 밀(蜜)이 두 번 더해졌으니
‘정말로 달콤하다’라는 형용사입니다.
중국어로 된 노래중에서 어쩌면 우리에게 유일하게 귀에 익은 친숙한 노래일수도 있겠네요.
이번 기회에 노랫말을 함께 음미하시면서 들어보시면 달콤함이 배가 되리라 믿습니다.
어디에서 당신을 만났었죠?
당신의 웃는 얼굴이 무척 낯익어요.
금방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아, 생각이 났어요! 꿈 속이었어요
꿈 속에서, 꿈 속에서 보았어요
정말 달콤한 당신의 미소를
당신이었군요 당신이었군요
꿈 속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군요
어디에서 당신을 보았었죠?
당신의 웃는 얼굴이 무척 낯익어요
금방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아…꿈 속이었군요
정말 달콤하지요? 다른 중화권의 노래가 우리 정서와는 별 공감대를 갖지 못한 반면
왜 ‘첨밀밀’은 우리 귀에 쏙 들어왔을까요?
특이하게도 이 노래는 인도네시아 민요에 중국어 가사를 붙이는 바람에
중국노래 느낌이 나지 않으면서도 노래 반주에 사용된 Dizi라는
중국 전통악기가 우리의 정서를 건드리는 듯 합니다.
중화권 최고의 가수 ‘등려군’의 빼어난 가창력이 노래를 돋보이게 한것도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동명 타이틀 영화 ‘첨밀밀’이겠지요.
역시 노래는 대중의 사랑을 받은 시각적인 스토리와 결합했을 때
단박에 기억되는 명곡으로 남게되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클래식으로 자리매김되나 봅니다.
<달콤한 영화 : 첨밀밀>
다 아시겠지만 1996년 천가신 감독이 만든 이 홍콩영화는 각각 다른 꿈을 안고
중국대륙에서 홍콩으로 건너 온 두 남녀가 펼치는 인연과 인연으로
점철되는 현실적이면서도 애틋한 사랑이야기이지요.
‘장만옥’과 ‘여명’의 출중한 연기는 사랑의 갈림길에서 흔들리는 두 주인공의 심리묘사에서 탁월함을 발합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등려군’과 그녀의 노래입니다.
러브스토리의 결정적 장면마다 1,000여곡의 노래를 통해 중국인의 연인으로 군림하다가
42살의 나이로 요절한 ‘등려군’의 노래들이 이 영화의 달콤함과 애잔함을 극대화시켜 줍니다.
‘ 첨밀밀’ ‘달빛이 내마음을 대신해요’ ‘야래향’ 다 기억나시죠?
10년동안 그리워하다가 먼 이국땅 뉴욕에서 ‘등려군’의 사망소식을 전하는 TV앞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두 연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가만히 웃지요.
이 때 흘러나오는 노래는 당연히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가 어울리지요?
이 영화를 한 줄의 문장으로 표현하면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만난다!'
어떤가요? 거듭되는 우연은 필연이 아닐까요…
<달콤한 그림 이야기>
여자의 벗은 몸을 그리는 일은 회화역사에서 늘 논란의 중심에서 숱한 화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도덕론자들의 비난을 피하는 방편으로 신화, 성경, 역사 이야기를 끌여들여
애둘러 여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옛 화가들에 비해 현대 화가들의 그림은
너무 직접적이고 감각적이다보니 미술작품인지 삽화인지 광고인지 외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만큼 가벼워졌습니다.
이런 그림들을 제 나름대로 ‘달콤한 그림’ 이라고 이름지어 봅니다.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커피에서 단 맛이 날 것 같은 미국현대화가 그림 2점입니다.
굳이 오래 들여다보거나 설명이 필요 없지요? 달콤함이 너무 지나치면 달달한 맛이 나는가 봅니다.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그림은 클래식으로 살아남기 어렵겠지만
점점 가벼워지고 감각 지향적인 이 시대의 거울로 남기기 위해 감성편지에 실어 보았습니다.
<봄날은 간다>
봄날의 화사한 꽃 퍼레이드는 가을의 달콤한 결실을 위해
멋진 색깔과 달콤한 꿀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치열한 생명의 경연대회인 셈이지요.
‘뽐냄 경연장’을 무사히 통과한다 하더라도 다음엔 당연히 비, 바람, 태양의 온갖 시련을 씩씩하게 견뎌내야겠지요.
우리의 삶이 이러한 오랜 수고와 짧은 보람의 연속이기에 봄날은 늘 금세 지나가나 봅니다.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꼭 달콤한 커피와 조각 케익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5월은 ‘뽐내다’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