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편지여섯: 마음을 달래다, Let it be.
2014-05-16 | 76
감성편지 여섯 : 마음을 달래다, Let it be.
상심의 바다를 건너고 계신 S님에게!
풍경이 쑥쑥 자라더니 금새 푸르름의 터널이 봄꽃 퍼레이드를 대신하여 우리의 지친 눈과
거칠어진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줍니다.
우리의 마음은 쉽게 지치고 상하여, 부글거렸다가 사나워지고 외로움과 슬픔에 금방 약해지는
특별한 속성이 있나 봅니다.
그러다가도 또 다시 작은 희망의 끈을 붙들어 애써 마음을 달래가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겠지요.
달래다 : 격한 감정이나 기분을 가라앉히다
<실컷 울다>
<반고흐, 슬픔>
얼마전 감성리더십 강의 시간에 정년퇴직을 앞둔 중년 남성분이 제게 질문을 주셨습니다.
‘제가 요즈음 부쩍 눈물이 많아졌는데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가요? 가족들과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는 바람에 민망하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러나 싶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사람다워서 더 좋은데요. 그런데 이왕 울 바엔 엉엉 소리내어 실컷 우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감정이 격해져서 흘리는 눈물과 눈에 티끌이 들어갔을 때 흘리는 눈물은
단백질 구성이 화학적으로 전혀 다릅니다. 감정에 겨워서 눈물을 흘리는건 신체가 받고 있는
과도한 스트레스 화학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이므로 실컷 울고나면 기분이 개운해지고 몸이 한결
가벼워졌음을 느끼게 되는거지요.
콧물도 성분과 기능이 눈물과 똑같기에 여성들이 마음먹고 한번 울음보를 터트리면 아예
화장지를 박스째 준비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는 또 다른 의도가 있을까요?’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눈동자와 뺨을 반짝거리게 하는 눈물은 주변 사람의 시각과
거울신경세포에 즉각 포착되므로 자기의 격해진 감정을 알려줌과 동시에 위로와 위안을 해달라
는 강력한 시각적 감정표현인 셈입니다.’
‘상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도 일종의 기술인가요?’
‘저는 사랑의 필수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피부에는 일정한 속도와 압력으로 리드미컬한
신체접촉이 행해지면 뇌처럼 감정을 인식하는 C-촉각 신경섬유세포가 존재하고 있음은 다 아실겁니다.
이런 음악적인 신체접촉은 우리 뇌에서 엔도르핀과 옥시토신의 분비를 촉진시켜 행복감과
연대의식, 안전의 느낌을 더 확실히 인식시켜주게 되지요.
그러므로 믿을만한 사람이 행하는 안아주기, 쓰다듬기, 토닥여주기, 매만져주기, 닦아주기 등
일련의 접촉위안(Contact Comfort)의 동작들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슬픔을 달래주고
분노를 삭여줍니다.’
이제 제가 좋아하는 화가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생생한 그림으로 시선을 돌려보실까요?
<성모 마리아 I. 석방명령>
<석방명령 1746년, Tate Gallary, 런던>
1746년,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패전하고 투옥되었던 스코틀랜드 병사 복장의 부상당한 사내가
감옥문을 막 벗어나 사랑하는 가족과 해후하는 장면입니다.
영국군 복장의 간수는 여인이 건내주는 석방통지서를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검둥개도 오랜만에 만난 주인의 부상당한 손등을 핥으며 반가워 어쩔줄 모르고
엄마의 팔에 안겨있는 아가는 아빠를 만나면 주려고 꺾어둔 노란 꽃을 한 손에 늘어뜨린 채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이 좀 색다르지 않나요?
찬찬히 들여다보면 궁금증이 더해집니다.
그림을 좀 확대해서 볼까요?
왜 석방통지서를 아내가 직접 간수에게 전달하고 있을까요?
키가 훨씬 큰 남편이 눈을 감은 채 아내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네요. 당연히 애타게 기다렸던
아내가 남편의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울텐데…
아내의 표정과 몸짓도 범상치 않습니다. 담담함을 넘어서 초월한 듯한 얼굴도 그렇거니와
의당 남편을 향해 있어야 할 시선은 저 멀리에 가 있습니다.
하나 더, 여인이 두르고 있는 청색 베일과 하얀 맨발도 눈을 끕니다.
두 손을 굳게 꼬옥 잡고 있지만 애써 시선을 피하고 있는 복잡한 마음의 착한 부부를 보고 있자니
제 마음도 복잡해집니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야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이 그림은 1746년 스코틀랜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밀레이가 마치 눈 앞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생생하게 재현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눈물과 탄식 대신 영국군 사령관에게 요즈음 용어로 성상납을 댓가로 남편의 목숨을 구해냈다고 합니다.
이런 사연을 알고 나서 다시 그림을 바라봅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아, 그래서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구나.
그렇지요. 만감이 교차할 때는 차라리 침묵이 더 나을 듯 싶습니다.
꼬옥 잡은 두 사람의 손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아가를 안고 있는 엄마의 팔과 아빠의 손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청색 베일에 다시
눈이 갔습니다.
아, 밀레이는 이 여인에게서 성모 마리아를 발견했군요.
청색 베일과 순결한 맨발은 성모 마리아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아이콘이자 상징이니까요.
곤히 잠을 자면서도 아가가 꼬옥 쥐고 있는 작은 노란 들꽃은 이 가족의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아마도 집에 돌아가 혼자 있게 되면, 남편도 아내도 소리죽여 오래오래 울지도 모릅니다.
이 울음을 성모 마리아께서 들으신다면 틀림없이 이 노래를 불러주실 겁니다. ‘Let it be’
그리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실 겁니다.
<성모 마리아 Ⅱ. Let it be>
1969년 여름, 비틀즈 멤버인 폴 메카트니는 계속되는 음악적인 압박과
멤버들간의 심각한 불화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꿈 속에서 그의 나이 14살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만났는데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아들의 지친 심신을 토닥여 주셨답니다.
『It will be all right, just let it be』
마치 성모 마리아가 들려주는 듯한 엄마의 말씀 중에서 ‘let it be’를 제목으로
멋진 치유의 노래를 작사·작곡하게 됩니다.
이 노래는 비틀즈의 12번째이자 마지막 앨범에 실려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세계적인 No.1 애창곡으로 금방 자리매김 되었습니다.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는 소프라노 레슬리 가렛 의 목소리로 들어 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