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편지 아홉 : Try to remember, 애쓰다
2014-05-16 | 70
'애'는 우리 몸의 창자를 지칭하는 옛말이면서도 근심에 싸인 속마음을
감상적으로 표현하는데 자주 등장합니다.
형용사와 결합하면 우리만의 처연하고 비장한 정서를 원색적으로 드러내 보인답니다.
애가 끊어지다. 애가 탄다. 애를 태우다. 애간장을 녹이다.
애를 먹다. 애를 먹이다. 애끓는 애가 닳도록 애달픈 애틋한..
'애'가 이렇게 많이 쓰이다니, 이런 절절한 감성어휘들이 좀 과장스럽기는 하지요?
애쓰고 애쓴는 근사한 내 친구에게 가장 9월스런 느낌의 노래를 선물로 드리면서
오딧세이를 시작합니다. 좋아하시는 Try to remember 입니다.
Try to remember 이야기
뮤지컬에 등장하는 노래 딱 한 곡이 이 뮤지컬을 42년 동안 17,162회라는
전대미문의 세계 최장공연 기록을 수립하게 했다면 참으로 대단한 노래이겠지요.
1960년 6월 초연된 뮤지컬 코미디 'The Fantasticks'에서 불려진 'Try to remember' 입니다.
이 노래가 가을 햇살 같은 부드러운 정서를 느끼게 해주면서
좋았던 그리운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데는 멜로디 이외에도 가사에
반복 등장하는 부드러운 어휘가 한몫하고 있습니다.
~b(d)er와 ~llow를 입술과 혀를 의식하면서 발음해보시면 금방 느낌이 오실 겁니다.
remember mellow yellow callow
september fellow willow pillow
so tender billow hollow follow
December
'remember'는 14번이나 되풀이되면서 최면을 유도하고
모든 소절의 마지막은 'follow'로 마무리되면서 긴 여운이 남아 한참을 추억에 잠기게 만듭니다.
1965년, 미국 남성 4중창 'Brothers Four'의 멋진 화음과 부드러운 발성은
이 노래에 날개를 달아줍니다.
다 아시겠지만 이번에는 말씀드린 어휘들을 염두에 두고 따라 불러보시라고
2절까지의 노랫말을 보내드립니다.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life was slow and oh, so mellow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grass was green And grain was yellow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you were a tender And callow fellow
Try to remember and if you remember
Then follow, follow
Try to remember When life was so tender
That no one wept except the willow
Try to remember when life was so tender
That dreams were kept beside your pillow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love was an ember About to billow
Try to remember and if you remember
Then follow, follow, follow
어떠세요? 'Brothers Four'가 9월에 듣기에는 딱이지요?
이제 애써서 그린 그림을 보실까요...
애써서 그린 그림, 오필리아
지난 6월 '석방명령'이란 그림으로 소개를 드린 밀레이 (John Everett Millais)의 다른 그림입니다.
제목은 오필리아(Ophelia)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 4막 7장에서
햄릿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달아나자 실성한 채 들판을 헤메다가 강물에 빠져죽는 햄릿의 여인,
오필리아의 비극적 종말을 슬프지만 매혹적으로 그려낸 명작입니다.
눈동자는 먼 하늘을 향하고 옷은 꺼져가는 영혼인 양 물속으로 번져가고 하얀 목덜미,
핏기가 가시지 않은 두 뺨과 순결한 얼굴모습은 어두운 물빛과 도드라지게 대비가 됩니다.
생생하게 섬세하게 표현된 꽃송이들이 영원한 삶을 표현한다고 생각하면
그림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삶과 죽음의 경계에 흐르는 비장한 기분을 맛보게도 해줍니다.
그럼 말레이가 이 그림을 그리면서 얼마나 애를 썼는지 조금 더 들어보실래요.
머리 위에 버드나무가 그려져있는 것을 보면 오필리아는
조금 전까지 버드나무로 화한을 엮다가 강물에 빠진 모양입니다.
그 바람에 화한은 풀어 헤쳐지고 주인잃은 꽃들은 속절없이 물위에 떠있습니다.
12종류의 식물과 꽃들이 화폭을 수놓고 있습니다. 버드나무, 쐐기풀, 손에 쥔 데이지, 장미, 제비꽃, 물망초..
이것들은 모두 '햄릿'에서 실제로 언급되었던 꽃들을 꼼꼼하게 그린 것입니다.
조금 확대해서 보시면 얼마나 애써서 그렸는지 아실 수 있으실겁니다.
밀레이는 이 그림을 두번에 걸쳐 나누어 그렸습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5개월 동안 하루에 열한 시간씩 강가에 나가
식물 하나하나와 강물을 관찰하여 화폭에 그려낸 다음,
익사체를 본 적이 없기에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물이 가득찬 욕조에 완전한 복장을 갖춘 모델을 눕게 하고
수 많은 스케치와 습작을 하고 나서야 인물을 그려 넣은 거지요
이 시기가 한 겨울이어서 램프로 계속하여 욕조를 접혔지만 급기야 모델은 급성폐렴을 앓게 됩니다.
참으로 애써서 그린 그림입니다.
'애쓰셨습니다. 밀레이 선생님'
오필리아는 너무 비장한 느낌이셨죠?
그럼, 보는 이들을 미소짓게 만드는 밀레이의 연작 수채화 그림을 구경해 보시지요
애쓰는 아이, My First Sermon
밀레이의 다섯 살 난 딸, 에피 입니다. 제목 그대로 난생 처음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고 있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는데 반짝거리는 아이의 눈에는 긴장감이 역력하지요?
꼬마숙녀로서 격식을 다 갖춘 복장도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닌데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이해불가능한 설교의 말씀이라니..
나름대로 품위를 지키려고 애쓰는 주인공의 의지가 깜찍하고 귀엽습니다.
그래서 참 기특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My Second Sermon
한 해 뒤에 밀레이는 에피의 속편을 발표했습니다.
첫번 설교에서 이미 교훈을 터득한 딸은 깊은 잠속에 빠졌습니다.
설교는 설교대로 지루했고 숙녀복장은 답답했고,
게다가 한 자리에 오랜 시간을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왜 그리도 힘든지... 딸의 선택은 딱 한 가지.
궁금해집니다. 아빠는 딸을 세번쨰 설교에 데리고 갔을까요?
왕립 아카데미 전시회에서 이 그림을 본 켄터베리 재두교는 연회축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오늘 아주 유익한 교훈 하나를 배웠습니다.
여기 작은 숙녀 한 분이 계시는데.. 아주 우아하고 조용하게 주무시는 그 모습에서
긴 설교는 얼마나 악한 것인지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하고 잇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짧게 마무리 인사를 드려야만 되겠네요
지금 기꺼이 애를 쓰고 계시는 대상이 사람이든 일이든 꼭 좋은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눈 내리는 12월에 이 가을을 뿌듯한 마음으로 되돌아 보기로 약속할까요?
'애쓰다'의 테마에 걸맞는 편지를 쓰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마음에 드셨나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