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I 칼럼

고수와 여백

2014-12-11 | 72

 

고수와 여백

 

몇 해 전 새해 첫날 회사 전 직원과 개성관광을 갔다.

긴장과 흥분으로 군사분계선을 건너 북쪽으로 버스를 타고 가자

채 30분도 못돼 개성에 도착되는 걸 보면서 이렇게도 가까운 곳을

가볼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고 허탈하기까지 했다.

 

 

우리의 지방국도보다 좁고 포장도 제대로 안 된 2차선 도로에 올라서자

북측 관광안내원이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 방문했을 때 지나갔던 개성~평양 고속도로라고 하며

자랑하듯이 말하는 게 좀 안쓰럽고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행 중 한 명이 이 고속도로로 개성에서 평양까지 몇 시간 걸리느냐고 묻자

"몇 시간 걸린다고 정해진 게 어디 있습니까?

차가 빨리 달리면 빨리 도착하고 늦게 가면 오래 걸리는 거지요"라며 퉁명스럽게 답하자 모두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러나 그 대답이 안내원의 재치나 유머감각 때문이 아니라

남북의 문화 및 생활양식 차이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알아채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남측 사람들은 왜 모든 것을 숫자로 파악하려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안내원의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경쟁이 없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하에서는 우리의 자본주의적 관심을 이해할 수 없고,

개성에서 평양까지 소요시간을 정확히 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역시 디지털, 모바일, 빛의 속도 등의 용어에 익숙한 우리 눈에는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채 남아있는 개성은 30년 전 세워진 빈 세트장 같은 도시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심장전문의 로젠먼과 프리드먼은 심장병 환자 중 많은 사람이 공통된 행동패턴을 보인다는 것에 주목해

A형 인간과 B형 인간이 있다는 것을 규명했다.

 

 

어떤 부류의 사람은 시간에 쫓긴다는 느낌으로 늘 서두르며, 참을성이 없고

질보다는 숫자나 양의 견지에서 사물을 파악하고 한 번에 한 가지 이상의 일을 시도 및 생각하며

매우 경쟁적인데 이들을 A형으로 명명했다.

A형 행동을 보이지 않는 사람을 B형이라 불렀다.

 

 

우리 사회는 더 높은 생산성·성취·성공을 추구하기 때문에

A유형은 더 열심히 일하는 성공적인 사람의 특성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A유형의 업적이 B유형보다 더 높은지를 연구했는데

어느 누구도 A유형의 업적이 B유형보다 더 높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반면 A유형은 B유형보다 심장마비를 일으킬 가능성이 더 높으며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으로

수명이 짧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혀졌다.

즉 경쟁적이고 바쁘게 살지만 실속은 없다는 것이다.

 

 

바둑을 잘 두지 못할수록 돌들이 뭉쳐 있는 반면

고수들은 돌을 띄엄띄엄 놓더라도 돌과 돌의 유기적 연결이 잘되고

하나하나의 돌이 복합적 함의가 있어 버릴 게 별로 없다.

그림도 좋은 그림은 화폭 속에 그림을 잘 그렸는가만큼 여백을 얼마나 조화롭게 처리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A유형 리더는 내용을 잘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과와 변화 창조는 여백 처리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생활습관과 일을 리엔지니어링하고 '여백'을 의도적으로라도 만들어 보자.

 

서해안 고속도로 변에는 '속도를 늦추면 낙조가 아름다운 변산반도를 볼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판이 오늘도 서 있다.


 

 

 

솔루션가이드 신청하기 뉴스레터 구독하기 교육문의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