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에 대한 갈증
2015-08-10 | 242
공감에 대한 갈증
인터넷과 스마트폰 세상에서 캐릭터와 이미지 중심의 소통이 대세입니다.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영화의 다양한 캐릭터 모양 이모티콘이 바로 상품화되고 있고, 새해 인사나 명절 인사도 이모티콘을 활용해 전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SNS의 이모티콘 메시지가 아닙니다.
중국의 설치미술가 쉬빙(徐?)의 책, 『지서(地書)_점에서 점으로』 첫 부분입니다.
작가는 글자 하나 없이 아이콘과 이모티콘, 그래픽 심볼 등으로만 120여 페이지의 소설을 썼습니다.
그림과 기호들을 이해하기만 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작가 쉬빙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해석 가능성은 당신이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글을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도 달려 있지 않다.
다만 당신이 얼마나 동시대의 삶에 깊이 관여되어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이모티콘은 내가 상대방과 공감하면서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문자만으로는 알 수 없는 감정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상대방한테 내 기분을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이지요.
게다가 글은 하나하나 시간과 공을 들여 써야 해서 귀찮지만 이모티콘은 훨씬 간단하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하지만 이모티콘을 자주 쓴다고 해서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UCLA 심리학과 연구팀에서는 최근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디지털 미디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은 떨어지는 것으로 발표했습니다.
연구를 주도한 패트리샤 그린필드(Patricia Greenfield) 교수는 공감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직접 마주보고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디지털 기기 속의 이모티콘이 얼굴을 직접 마주보고 하는 의사소통을 결코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공감(Empathy)은 연민(Sympathy)과는 구분됩니다.
아픔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연민이고 그 아픔을 내 마음으로 느끼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 공감입니다.
연민은 상대방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감정이지만 공감은 타인의 마음속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연민이라면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것이 공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감은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서보고, 다른 사람의 느낌과 시각을 이해하며,
그렇게 이해한 내용을 활용해 나의 행동지참으로 삼는 기술입니다(출처. 로먼 크르즈나릭 저, 공감하는 능력)’ 그
래서 공감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디자이너 패트리샤 무어(Patricia Moore)를 통해 연민이 아닌 진정한 공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979년부터 3년간 패트리샤 무어는 미국의 116개 마을과 도시를 직접 돌아다니며 ‘노인 공감 체험(elder empathic experience)’을 실행합니다.
그녀는 신체적인 분장은 물론이고 청력, 근력, 시력까지 모두 85세의 할머니 수준으로 맞추어 보통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불편한 움직임을 직접 경험합니다.
이러한 공감 체험을 토대로 그녀는 다섯 살 아이부터 여든다섯 살 노인들까지 신체 기능 여하에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하기에 편리한 혁신적인 제품들을 디자인 해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속 대화에서 이모티콘은 분명 부족한 감성소통에서 훌륭한 하나의 양념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대화의 맛을 느끼고 싶을 때 남발되는 이모티콘 말고,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리운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갈증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그리운 사람의 전화 한 통, 직접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