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또 다른 여행.
2015-09-17 | 217
여행, 또 다른 여행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공간을 온종일 혼자서 돌아다녔습니다.
서로가 모르니 신경 쓰지 않아서 서로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이야기할 대상이 나밖에 없으니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잊고 있던 나를 알아갑니다.
다른 곳에서 다른 경험을 하니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혼자 하는 여행은 나와 친구가 되는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채우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비우기 위해서 여행을 합니다.
현재의 익숙함과 습관, 의무, 제약 그 모든 삶으로부터 훌훌 털어버리고 그냥 떠났다가 돌아오는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알랭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고 했습니다.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합니다.’ 라는 그의 말처럼,
여행은 그것이 어떤 여행이든 이미 늘 보는 대로 보는 습관과 이미 늘 듣는 대로 듣는 습관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우리가 이미 늘 보고 들었던 것을 허물어버립니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물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경험하게 해줍니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삶의 쉼표이자 물음표이고, 느낌표입니다.
좋은 여행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보통 여행을 알차게 하기 위해서 사전에 여행할 곳에 대해서 이것저것 자세히 알아봅니다.
무엇은 꼭 보아야 하고, 무엇은 꼭 먹어야 하고, 그곳에서 이것 이것은 반드시 해야 하고.
그렇게 여행 안내 책에 적힌 내용을 충실히 확인하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이런 여행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남들만큼 가봤다. 남들만큼 안다. 그 이상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미 남들이 꼼꼼하게 정리해 놓은 방식을 따라가면 분명히 안전하고 편리합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을 얻는 대가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것이 선택의 자유라는 게 아깝습니다.
가이드 된 여행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선택의 자유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사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다 나오는 정보를 모른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더 소중한 것은 그 순간의 느낌과 그 자리에 내가 존재했었다는 역사입니다.
지식과 정보는 우리가 찾으면 닿을 곳에서 늘 기다리고 있지만 존재했던 시간과 공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알고 기억하는 것보다 느끼고 체험하는 열린 여행이 더 오래 남습니다.
물론 열린 여행을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길을 잃는 것에 대한 불안감,
낯선 것을 맞닥뜨렸을 때 어찌할 바 모르는 당혹감,
같은 길을 되돌아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는 불편함 정도는 감수해야 합니다.
일상을 여행하듯이 살수는 없을까요?
‘여행만큼 우리의 생을 상징하는 말이 없다.’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입니다.
그는 ‘개인의 역사란 결국 어디에서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닌가’ 라며 여행에 대해 예찬했습니다.
소로우는 얼마나 먼 곳을 여행하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얼마나 깨어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풍경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데 꼭 멀리 떠날 필요는 없습니다.
가까이 있었지만 몰랐던 낯선 시장과 골목을 여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보지 않았던 장르의 영화를 보면서 여행하기도 합니다.
앨범을 보며 추억의 장면을 넘기는 과거로의 여행도 가능합니다.
깨어있는 눈으로 일상을 보는 것이 여행이며, 곧 우리 삶입니다.
열린 여행에 더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또 다른 어떤 여행을 하시겠습니까?